궁핍했던 시절,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근데 차, 자동차는 필요했었다. 뭔가 삶의 해방구가 필요한데, 내겐 그것이 자동차였다.
역시 자동차는 어른들의 장난감이라고 하던가?
대학다닐 때 친구 아버지 소유의 차를 그 친구가 가끔 주말밤에 끌고 나오면 그것을 얻어타고 다니다가 운전이 늘어버렸지..
그래서 내 운전은 상당히 자가용차 개인기사스타일이다. 고급차에 상전을 모시는 것처럼 운전이 시작되었다.
군대서도 성판차, 사제차 운전병하라고 성화가 있었는데, 기사노릇 하기 싫어서 그냥 노가다 뛰었다.
스텔라88처럼 생긴 소나타 원형이 대학다닐 때 첫 운전 상대였다.
파워핸들을 내게 처음 알려준 차량으로, 상당히 좋은 편의성과 운전, 동력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몰아보게 해줘서 고맙다 친구야...
(110도 정도 되는 급코너를 회전했더니, 180도로 차가 돌아버린 민망함을 안겨준 파워핸들!!)
그 외 아는 형이 끌고온 형 다니던 교회차 봉고 그리고 신형 베스타
친구녀석 제대기념 차량인 스쿠프
과선배의 티코
친구 누나네 농장 바네트
친구아버지차 로얄살롱
물론 고등학교 때도 운전은 했다. 무면허로 테헤란로를 질주했다.
미친 짓이지만, 그 때 강남은 지금같지 않았다.
친구네 피아트 132, 마크IV 등이 아주 가끔 운전 맛을 알려주던 그 때였다.
사용하고 나서 옛 경부톨게이트 자리인 양재동가면 지금 이마트자리가 아마 광주고속정비소와 그 때 당시 24시간 운영하던 주유소가 있어서, 기름 채우고 반납했었다.
바이크 타던 친구들은 양재동에서 세곡동까지 누가 빨리달리나 이런 것을 했었다.
물론 1등은 아니지만 나도 야밤에 순위권에 들었던 것 같다.
내 첫 차는 93년 스텔라 였다.
누가 새로나온 세피아를 사면서 아깝지만 폐차한다고 해서, 인수 받게 되었다.
검정색 4단기어에 1.6리터 원년도 모델이었는데,
그 때 당시 새차 등록 시 책임보험료 8만 9천원인가 주고 인수 받았다.
3번 실린더 블록이 깨져서 차량이 급경사를 지나면 오일이 들어가서 방역차 수준의 흰색 연기를 가끔 내뿜어서 주간에는 언덕길을 피해 다녔고, 밤에는 날라다녔다.
가끔 1.5리터 신형 스텔라 택시들이 밤에 내 뒤를 추격하고 했다. 총알택시를 추월하고 다녔으니, 생각해도 미친짓이었다.
그래도 나름 행복했었다.
원주황소부대에서 춘천성심병원까지 그 옛날 국도를 60분에 다녔다.
여자 만나러...그 때 차가 간절하게 필요한 이유가 아마 그 여자를 만나려고 해서 그랬나보다.
막차는 9시에 끝나는데, 자가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갈수 있었으니...여관비도 없을 시절 자가용 이야기 되겠다.
춘천-원주 강원여객과 금강운수가 내 기억에 원주>횡성>공근>홍천>성산>동면>춘천 이렇게 직행으로 1시간 50분, 원주>춘천 직통은 아마 1시간 30분정도에 다녔던 것 같다.
참 신이났었지. 한계령도 넘어다니고, 운두령, 구룡령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 까만차를 집에 차를 가지고 갔을 때, 그 설레임~~~ 내 첫 차가 되었으니까?
한번은 출근하다가 8호 광장에서 클러치가 말을 안듣는 것이다. 오거리인데...
교통정리하던 의경도 운전을 못하던 시기였지..
불러서 내가 밑에 들어가서 뭘 당길 테니까 당신은 2단에 기어를 넣어주삼.
의경은 저 운전 못해요.
알아... 이렇게 기아를 안쪽으로 당겨서 내려줘 그럼 되는 것이야 알았어....?해주삼...
나는 플라이어들고 밑에서 끊어진 클러치 케이블을 조낸 당기묜서, 빨리 기어 넣~~~
그렇게 2단에 고정시키고 시동걸면서 출발시키고, 다음 신호등에선 시동 끄고 대기하고, 이러면서 출근했다.
1.5리터엔진과는 케이블이 달라서 후평동 폐차장을 날 잡아 뒤져서 그 때 폐차들어온 개인택시 케이블 3개를 띁어와서 나중에 한 번 더 갈았던 기억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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