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6일 화요일

대학관련 옛이야기

“대한민국에 대학은 없다.”
2007년 9월 13일자 동아일보의 ‘오늘과 내일’ 칼럼 제목이다. 이 신문 수습 기자·사원 채용을 위한 논술 시험에서 나온 답안 내용이기도 하다. 논술 문제는 ‘대한민국 교육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논하시오.’

543명의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가장 심각하다고 꼽은 교육 문제는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폐해였다. 칼럼은 “그런데 의외인 것은 대학과 대학 교육에 대한 비판이 꽤 많았다.”고 소개했다. 요즘 대학생들이 그려낸 대학의 현주소와 자화상은 이랬다.

“깊이가 없는 수업, 연구하지 않는 학자, 오로지 입시를 위한 기계적 공부만을 하고 있는 학생만이 있을 뿐.” “줄세우기로 뽑은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 “우리나라 대학은 공고하게 정착된 서열구조 속에서 호의호식해 왔다.” “불량 대학생을 양산하는 대학 교육이 대한민국 교육의 열쇠를 쥐고 있다. 어중이떠중이 불량대학과 그들이 양산한 불량 지식인으로는 불량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대학생들은 이런 주장들을 내놓았다. “과감한 정원 축소와 경쟁력 없는 대학의 통폐합, 선택과 집중을 통한 특성 학문 육성, 자율화를 통한 대학 간 경쟁 유도, 실적 위주의 엄격한 교수 평가와 대우, 입학보다 졸업을 어렵게 하는 학사관리 등.”

세계 100대 대학에 한국 하나도 없다

어른들만 몰랐거나 “의외”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애써 모르는 체했던 대학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그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 출신자들로 추정되는 ‘언론고시’ 응시자들의 입을 통해서다.

대학생들의 말대로 입학 성적에 따른 서열화는 우리 대학의 경쟁력 향상을 가로막는 고질적 병폐의 하나다. 가르치는 경쟁, 배우는 경쟁 대신 뽑는 경쟁으로 서열을 유지하려는 우리나라 대학은 국제사회 평가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

해마다 국가 경쟁력의 항목별 순위를 발표해온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교육 부문은 2007년 전세계 55개 국가 중 40위, 2006년 61개국 가운데 50위였다.

2006년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100대 대학에 한국 대학은 하나도 들지 못했다. 같은해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평가에서는 세계 200위권 대학에 일본은 11개, 중국은 6개 대학이 있었지만 한국은 3개 대학(서울대, 고려대, 과기대) 뿐이었다.



학원소요에 밀린 대학 경쟁력

하지만 대학들은 수수방관하다시피 했다. 스스로 대학을 개혁하고 경쟁을 조장하려면 복잡하게 얽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건드려야 하는데 그게 골치아픈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경없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대학 교육의 경쟁력 확보는 국가 생존을 위해서도 절박한 일이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이라는 ‘숭고한’ 이념 앞에 국가 개입이라는 오명을 들으면서도 대학정책을 만들어내곤 했다.

문민정부 이래 대학정책은 연구와 교육에 관한 한 ‘경쟁 무풍지대’인 대학에 경쟁을 불어넣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대학에 경쟁을 심으려는 정부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대학간의 줄다리기가 문민정부 이후 고등교육정책의 운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교육당국은 의도했든 아니든 입시성적에 따라 굳어져버린 대학간 서열을 흔들려고 했다. 일부 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고 어떤 것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의 종합적인 대학정책은 5공화국 때의 10대 교육개혁방안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서류상의 계획’에 그치고 말았다. 김영식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교육부 차관 역임)의 말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일 큰 관심사는 학원소요 진압이었다. 교육부 대학국 인원의 절반 이상이 학원소요를 막는 데 투입됐다. 교육부 직원들이 경찰처럼 전국 주요대학에 진을 치고 일일이 시위상황을 체크했다. 공안대책회의가 열리면 교육부가 검찰, 경찰, 정보부와 함께 고정멤버로 참석했다. 문민정부 이전까지는 대학경쟁력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

대학경쟁력 강화에 나선 문민정부

대학 개혁의 밑그림을 총체적으로 그렸던 본격적 고등교육정책은 문민정부가 내놓은 5·31교육개혁안이다. 21세기의 교육 청사진을 그려내면서 대학 경쟁력 강화를 거론했다. 미래 고등교육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폭넓게 담아냈다. 학부제, 설립준칙주의, BK21, 의·법학 전문대학원, 국립대 법인화 등 대학 경쟁력 강화 정책은 대개 문민정부 때 밑그림을 그려놨던 것들이다.



문민정부의 고등교육 철학은 지식기반사회에 대비, 다양화와 차별화를 통해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철학의 배경에는 WTO 체제의 출범과 함께 지구촌을 휩쓴 신자유주의 바람이 있었다. 당시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5·31 개혁안을 주도한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의 말을 들어보자.

“정보화, 세계화의 지각변동이 일고 있었다. 다가올 새로운 문명의 중심권에 들려면 그에 걸맞는 ‘신교육체제’가 필요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만이 아니라 다양한 아이들의 특성과 재능을 모두 살려주는 교육이 그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도 다양하게 특성화돼야 했고, 교육체계도 아이들이 인접학문을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야 했다.”

이는 5·31 교육개혁안을 통해 공론화된 ‘모집단위 광역화(소위 학부제)’의 철학적 근거이기도 했다. 학부제는 1996년 서울대로부터 시도돼 1998년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명문화되면서 전국 대학들로 번져나갔다.

대학-학과 서열 해소 위해 학부제 도입

이명현 장관은 2001년 11월 26일자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부제의 취지는 ‘대학모형의 다양화’라는 5·31 교육개혁의 정신에 따라 법의학, 경영, 언론, 행정 등 직업과 관련한 과목들은 대학원 과정으로 돌리고 대학에서는 전공이수학점을 낮춰 복수전공, 연계전공 등을 통해 다양한 전공을 경험토록 하자는 것”이라는 요지로 말했다.

1996년부터 도입된 학부제는 급변하는 지식기반사회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학생들이 일부 인기학과에 몰리는 부작용으로 도입 초기부터 논란을 빚었다. 이를 보도한 1996년 10월 15일자 중앙일보
이 장관은 학부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학 분야에서 교수 되고 10년 지나면 대학원생보다 모르는 게 많아질 만큼 빨라진 응용학문의 생성 소멸주기”를 꼽았다.

학부제는 학제간 장벽을 허물겠다는 본연의 목적 외에도 학교와 학과 단위로 줄세워져 있는 대학들의 서열을 흔들려는 의도 또한 담고 있었다. 역시 이 장관의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입학점수에 따라서 대학과 학과가 한 줄로 서열화돼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인기전공을 이수한 학생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뽑지요. 이는 대학과 사회가 모두 망하는 길입니다. 늘 이야기하는 것이 ‘대충 뽑아서 잘 가르치자’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엄격히 뽑고 아무렇게나 가르치자’는 식이지요.”

학부제로 기초학문 “썰렁”

하지만 학부제는 대학사회로부터 만만치 않은 저항을 받았다. 학생들은 인기 응용학문 전공으로 몰렸다. 당연히 “기초학문이 고사할 것”이라는 주장이 쏟아졌다. 학부제가 오히려 학과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2001년 호서대 철학과는 단 한명의 전공 선택도 받지 못해 폐과를 결정했다. 소위 비인기 기초학문에 종사하는 대학교수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학부제의 부정적 단면들을 그린 삽화들이 신문 지면을 도배했다. 국민일보 2002년 4월 27일자 기사(요약)다.

“학부제가 대학가 시험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중간고사 때면 저학년들 사이에 전통처럼 내려오던 ‘족보 돌려보기’가 사라졌다. 대학도서관을 신입생들이 선점하는 이색풍경이 생겨났다. 대부분의 대학이 몇 개의 유관 학과를 묶어 모집한 뒤 2~3학기를 마친 후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학부제를 시행, 성적이 낮으면 인기학과에 갈 수 없어 1학년 때부더 ‘학점 따기’ 경쟁이 치열한 탓이다. 아예 재수를 해 같은 학부 혹은 계열에 재입학하는 사례도 있다. 연세대 사회계열 OO학번이었던 김모씨(22)는 1학년 1학기 학점이 좋지 않아 자신이 원하던 경영학과를 가기 어렵게 되자 재수해 같은 계열 01학번으로 재입학했다.”

학부제 기획자인 이 장관조차 “학부제는 사기”라고 선고했다. 전문대학원제, 교과과정개편, 대학당국의 제도에 대한 이해 등 전제조건 없이 실시한 탓에 부작용이 두드러졌다는 진단이다. 학부제의 철학과 취지에 대해 잘 아는 교육부 관료들마저 정권교체와 함께 모두 바뀌니 “등대 없이 항해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많은 대학들이 학부제에서 다시 학과제로 돌아섰다.

학 부제 실시 이후 학생들의 일부 인기학과 편중현상으로 기초학문 고사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졌다. 사진은 2006년 9월 26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인문 주간' 개막식에서 전국 80여개 대학 인문대 학장들이 인문학분야 신입생 모집을 학과제로 환원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모습.

이에 따라 교육부는 국립대에 대해 기존 학부, 학과군 등 광역 모집단위를 학과로 전면 복귀하는 것은 불허하되, 학문의 특성 또는 교육과정 운영상 필요한 경우에 한해 부분적으로 학과 모집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동대의 성공-무전공·무학부·무계열

하지만 운영의 묘를 살려 학부제를 성공시킨 대학들도 적지 않다. 한동대는 하나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5·31 교육개혁안이 지향한 학부제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국민일보 2007년 7월 2일자 기사다.

“1995년 개교 당시 정원 50명의 기계금속공학부는 학생이 20명 수준으로 줄자 2000년 문을 닫았다. 대신 기계제어공학부가 생겼다. 기계제어 분야 담당 교수들이 새로 충원됐고 금속 분야 교수들은 학교를 떠났다. 김영길 총장은 금속공학 전공자다. 기계제어공학부 교수들은 학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중략) 기계제어공학부는 2005년 삼성, LG 등 대기업 취업률이 92%까지 치솟았고 2006년에는 졸업생 전원이 대기업 관련 분야에 취업했다. 올해 기계제어과에는 100명 이상의 학생이 몰렸다. 한동대는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학생이 학과를 선택한다. 무전공·무학부·무계열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2학년 학생들은 성적, 정원에 관계없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한다. 한동대 교수들은 절박하다. ‘교수직=평생 직장’이라는 공식은 남의 대학 이야기다. 총장이 속한 학과도 사라지는 현장을 목격했다. 무한경쟁이다.”

경북 포항에 세워진 한동대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각종 대학 평가에서 ‘톱 10’에 진입하는가 하면 수능 성적 상위 10%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로 자리잡았다. 예컨대 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발표한 ‘대학의 서열구조 변화와 과외’라는 논문에 따르면 2001년 자연계 상위 10% 학생들이 선택한 대학은 17개 대학에 불과했는데 한동대는 가천의대, 교원대, 중문의대, 포항공대와 함께 지방대 5개 학교에 속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진통을 겪었던 학부제. 선택은 대학의 몫으로 넘어갔다.

대학설립 자유화-문민정부의 교육철학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1996년 문민정부의 2차 교육개혁안을 통해 도입됐다. 일정한 기준만 충족하면 학교 설립을 자유롭게 하도록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다양한 학교가 나와야 지식기반사회에 걸맞는 다채로운 인재를 키워낼 수 있다는 문민정부 교육철학의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준칙주의 적용으로 대학 숫자는 크게 늘어났다. 2004년에는 1996년보다 43개, 입학정원은 82만여명이나 불었다. 때문에 준칙주의는 뒤이은 정부들의 강력한 대학 구조조정에 빌미를 제공한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실제 1996년 교개위의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처음으로 대입 정원이 고졸 예정자 수를 초과할 전망이었다. 2003년과 이듬해 대입 정원은 각각 66만5473명과 65만4308명으로 같은 해 고교 졸업자 59만413명과 58만8550명보다 6만여명 많았다. 2005년엔 대입 정원이 수능 지원자 숫자마저 초과했다. 수능 지원자들은 눈높이만 낮추면 어느 대학이든 골라 들어갈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대입정원 초과현상은 2017년부터 본격화돼 2023년에는 대입정원(60만3302명)이 수능지원자(44만7306명)보다 15만5000여 명 이상 많아질 전망이다.

2017년 이후 대학 입학정원 초과현상이 본격화될 전망이어서 정원감축, 통폐합 등 대학구조조정은 생존을 위한 필수사항이 되고 있다.

이를 예상하면서도 준칙주의를 도입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문민정부 당시 교육개혁위원이었던 박도순 전 고려대 교수는 준칙주의를 “철학의 변화”라고 설명한다.

“대학의 생존도 시장원리에 따라야”

“별도의 수학능력을 가진 이들에게만 대학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교수 방법에 따라 누구든 대학 과정을 어려움 없이 이수할 수 있고 원하는 이들은 모두 대학에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준칙주의는 앞의 철학이 뒤의 철학으로 넘어간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양한 재능을 갖춘 이들이 모두 자기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기관이 나와줘야 한다는 참여정부 교육철학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정원을 못채워 허덕이는 대학 문제는 어찌 할 것인가. 문민정부 교개위원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대학의 진입과 퇴출 문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망할 곳은 망하고 수요자가 선택하는 곳만 살아남도록 자유경쟁 원리를 대학에도 도입하고자 했다.

교육부는 교개위와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대학의 설립과 존폐를 자유경쟁시장에 맡기자는 데 대해 교육부 내에서는 부정적인 분위기였다. 당시 대학관련 정책을 담당했던 교육부 공무원의 말을 들어보자.

“시장원리가 완벽하게 작동하려면 이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 대학이 망하면 그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다른 대학으로 옮겨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 현실에서 이는 어렵다. 대학이 망하면 당장 학생 보호 문제가 불거진다. 이동성의 제약으로 아직은 교육정책에 시장경제원리가 완벽하게 작동할 수 없다고 보았다. 교육부는 현실론을 강조했지만 교개위는 이상을 택했다.”

밥그릇 싸움속에 더딘 대학통폐합

대학 구조조정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됐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덮치면서 국민의정부 내내 사회 전반에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대학만 예외일 수 없었다.

IMF외환위기 이후 대학의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2000년 국립대 통폐합과 정원감축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국립대 발전계획'이 발표됐다. 이를 보도한 2000년 7월 28일자 중앙일보
국민의정부는 1998년 ‘국립대학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수정·발전시켜 2000년 ‘국립대학 발전계획’을 내놓았다. 주요내용은 국립대 통폐합 및 정원감축을 유도하고 그 실적을 재정지원과 연계한다는 것이었다.

초기 성과는 기대에 못미쳤다. 대학간 통합은 한곳(공주대·공주문화대)에 그쳤다.

대학 구조조정이 어려운 이유는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였다. 한 명문대는 산하 대학병원 한 곳을 심장병 전문센터로 특화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심장병 연구와 관련이 적은 학과 구성원들이 사사건건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심장병 연구에만 예산이 집중되리란 우려에서였다.

교육부가 악역을…

한 지방국립대와 국립교대의 경우는 10여년 전부터 통합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이들의 통합과정을 지켜본 한 대학 관계자의 증언이다.

“통합 논의 초기 당시 해당 국립교대 교수는 20여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국립대 조직편제에 따라 모든 교수 하나하나가 다 보직교수였다. 게다가 그들 서로간에 이해관계가 다 달랐다. 이를 조정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통폐합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대입 정원이 고교 졸업자수를 초과하게 되자 참여정부는 대학구조개혁에 앞장서는 ‘악역’을 떠맡게 됐다. 참여정부는 2003년 ‘대학경쟁력강화방안’과 2004년 ‘대학구조개혁방안’을 통해 대학 통폐합 및 정원감축, 법인화를 목표로 한 국립대 운영체제 개편, 자발적 구조개혁을 촉진하기 위한 사학의 수익사업 일부 허용 등의 과제를 잇달아 던졌다.

이후 정부의 각종 구조개혁 및 특성화 사업에는 정원 감축 및 교원 확보율 등 구조조정 관련 지표가 빠짐없이 연계됐다. 정부가 제시한 구조개혁 가이드라인을 충족한 대학들만 각종 사업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참여정부 들어 대학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과 대학의 구조조정 실적을 연계하는 방식이 이전 역대정부에 비해 훨씬 강화됐다.

구조개혁의 격랑을 탄 한국 대학

'BK21', 그러니까 ‘두뇌한국(Brain Korea) 21’은 대학원을 특성화해 첨단과학기술분야를 집중 육성하려는 정부의 초대형 재정지원 정책이다. 1999년부터 7년간 564개 사업단에 대해 2000억원씩 1조 4000억원이 지원됐다.

BK21 사업은 국민의정부 들어 본격 시행됐지만 그 뿌리는 역시 문민정부 교육개혁안이었다. 그 교육개혁안에는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을 선정, 집중투자해 2005년까지 세계수준의 명문대를 만든다는 방안이 담겨 있었다.

BK21, 당초 타겟은 서울대

이는 당초 서울대를 겨냥했었다. 서울대 학부를 인문, 사회, 자연 등 3개 분야의 소규모 인원으로 줄이는 대신 대학원을 활성화시켜 서울대를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 대학으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서울대 한 곳에 BK21 전체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었다. 프로젝트가 제대로만 작동되면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중심대학 탄생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여기에는 서울대를 입시 시장에서 빼냄으로써 과열 입시경쟁을 막고 공교육 정상화를 이루자는 복안이 섞여 있었다. BK21의 취지는 서울대의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의 전환을 통해 고등교육의 질적 수월성 제고와 공교육 정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자는 것이었다.

OK목장이 돼버린 BK21 사업

1999년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BK21사업은 선정과정에서 일부 탈락한 대학의 반발이 거셌다. 이를 보도한 1999년 9월 1일자 중앙일보
하 지만 이런 의도는 다른 대학들의 반발에 부딛쳤다. 심사 대상이 당초 서울대 하나에서 서울대를 포함한 3개 대학으로 늘어났다가 모든 대학원들로 결정됐다. 또 첨단과학기술분야만을 지원하려 했던 사업이었으나 인문사회분야 및 지방 BK21 등도 추가됐다. 천문학적 규모의 지원금이 집행되는 만큼 대학 교수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했다. 경향신문 1999년 7월 6일자 기사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과 지역우수대학을 육성한다는 ‘BK21’ 사업을 둘러싸고 전국의 대학가가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특히 교수들은 4.19혁명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 거리시위에 나서는 등 교육부의 사업 추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중략)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과 교수 사이, 교수들끼리 참가 여부를 놓고 내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사회대가 교수회의 결정으로 참가치 않기로 결정했으며 일부 교수들은 서울대 전면개편론과 해체론까지 들고 나오기도 했다. 고려대에서는 대학당국이 한국학 등 일부 분야의 참여를 신청키로 했으나 일부 교수들이 ‘들러리를 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등 혼선을 겪고 있다. 이공계열 9개 분야중 6개 분야 등에 참여할 계획인 연세대는 사업단이 구성된 학문분야에서 교육부의 자격제한 조건 때문에 일부 교수를 빼는 등의 문제로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

BK21 사업은 사업단 선정단계에서도 끊임없는 시비를 불렀다. 김영식 당시 교육부 대학국장(교육부 차관 역임)의 말이다.

“BK21은 대학의 위상, 나아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래서 다들 죽기살기로 덤볐다. 탈락된 팀들은 매일 내 방 앞에 줄을 섰다. 평가가 불공정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평가를 교육부가 한 게 아니고 당신들의 동료인 교수들이 직접 한 것’이라고 설득했다. 일부 교수들은 ‘이렇게 항의라도 하고 가야 총장 얼굴을 보기에 덜 민망해서 그런 것’이라고 고백했다. 탈락 팀들은 국회로 가서 의원들에게도 교육부의 평가가 불공정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당시 2~3년간 교육부는 국정감사 때마다 BK21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시달렸다.”

돈으로 정책을 사려 한다?

시행 단계에서 또 하나의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가 BK21 사업 심사에 대학의 학부제 모집 실적 점수를 반영한 것이다. 학부제 모집은 법령상 강제사항으로 못박혀 있진 않지만 재정지원 사업들과의 연계 때문에 대학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들이 부랴부랴 모집단위를 광역화했다. 대학들은 “대학원의 특성화나 연구 수월성이 학부 단위에서의 학부제 시행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불만스러워했다.

이같은 원성은 참여정부 내내 터져나왔다. 참여정부는 누리사업단, 수도권대학 특성화 사업단, 전문대 재정지원 사업단 등을 선정할 때 대학 구조개혁 점수를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대학들의 자율적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대부분의 재정지원사업 심사에 구조조정 실적을 점수화해 반영했다. 표는 대학들의 정원감축, 교원확보율 등의 실적을 점수화한 2006년 대학특성화사업 심사표 일부.

예컨대 2005년 정부는 BK21 사업과 관련해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했거나 전환 신청을 한 대학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할 의사가 없었던 서울대·연세대는 “신판 연좌제 논리”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결국 전문대학원 체제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BK21은 우리나라 대학원을 특성화된 연구중심 허브로 키우겠다는 사업”이라면서 “이를 위해 학부제 정착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얻은 게 더 많은 BK21

실제 다른 나라들도 대학들을 정책목표로 유인하기 위해 재정지원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김미숙 교육개발원 입시제도연구실장은 “대학들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정부의 정책유도 수단 가운데 재정지원 정책 비중이 커지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BK21에 대해 이제는 대학들도 실보다는 득이 컸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BK21이 대학사회의 문화를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입시성적 위주로 고착화된 대학들의 완고한 서열에 일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BK21 재정지원을 통해 신흥명문으로 발돋움하는 소규모 지방대학 및 대학원 중심 대학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런 대학에 우수 학생들이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 나라의 중심 고등인력인 대학원생들의 연구여건도 크게 개선됐다.



교육부 관료 출신인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수는 “과거 대학원생들은 학교를 통한 장학금 등 이외에는 학비 보조를 받을 길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왠만하면 장학금 받고, 학비보조 받아가며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면에서 BK21의 성과가 뚜렷하다는 설명이다.

참여정부는 2003년 ‘대학 경쟁력 강화방안’을 통해 BK21을 확대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2006년부터 7년간 제2차 BK21 사업을 벌이고 선정된 대학 사업단에 총 2조 3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국립대 법인화 방침에 교수들 똘똘뭉쳐

참여정부의 고등교육 정책과제 가운데 미완의 것들도 많다. 대표적인 두 가지가 2005년부터 본격 추진된 국립대 법인화와 2003년 대학경쟁력 강화방안에 명시됐던 고등교육평가원 설립이다. 두 정책의 법적 근거가 될 ‘국립대학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과 ‘고등교육평가에 관한 법률’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중이다. 특히 후자는 국회에서 두 해를 넘겼다.

국립대 법인화 논의는 1987년 교육개혁심의회의 ‘교육개혁종합구상보고서’에 장기추진과제로 첫 등장했다. 이후로도 5.31 교육개혁안(문민정부), 국립대학 발전계획(국민의정부) 등 역대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에 단골로 오르내렸다. 하지만 본격적 논의는 참여정부 들어와서 시작됐다. 일본이 2004년 87개 국립대를 전격 법인화한 것이 자극제가 됐다.

법인화란 국립대 지배구조를 바꿔 정부에 의존해온 대학을 ‘홀로서기’시키겠다는 것이다. 대학회계 도입을 통한 재정의 자율성과 독립성 확보, 이사회를 통한 대학운영, 총장 직선제에서 간선제로의 전환 등이 골자다. 그간 정부 예산에 기댔던 국립대를 시장 경쟁 속으로 밀어넣어 체질을 강화하자는 목표를 지녔다.

국립대 법인화는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2005년 5월 그 추진을 공언한 뒤, 이듬해 1월 대통령에게 보고한 ‘대학특성화 추진방안’을 통해 구체적 타임스케줄이 세워졌다. 2006년 상반기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2007년부터 시행, 2010년까지는 울산과기대·인천대·서울대 등을 포함해 최소 4~5개 국립대를 법인화한다는 것이었다.

2006년 국회 제출이 목표였던 법안은 2007년이 되어서야 국무회의를 겨우 통과했다. 대학 사회 전체가 똘똘 뭉쳐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교수들은 이사 임명권의 상당 부분을 쥐고 있는 정부의 입김이 여전한 가운데 교수들의 입지만 줄어든다고 했다. 교직원들은 공무원 신분의 박탈을 우려했다.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이 예상된다고 시위에 나섰다.

국립대의 '홀로서기'를 목표로 한 국립대 법인화작업은 국립대 구성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사진은 2006년 11월 6일 열린 '자율선택에 따른 국립대학 법인화를 위한 공청회'에서 법인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항의하는 모습.

국립대 법인화법을 둘러싼 공청회장은 내내 이를 반대하는 대학교수, 교직원 단체, 총학생회 등의 시위로 파행을 면치 못했다. 2006년 가을 당시 언론보도 제목들이다. “국립대 법인화 공청회 난장판 무산”(YTN), “몸 던지는 교수들”(동아일보), “국립대 법인화 방해 교수 45명 입건”(세계일보), “‘반쪽’ 국립대 법인화 공청회”(뉴시스).

교육부의 1보 후퇴

결국 교육부는 국립대 법인화 추진 여부를 각 대학 자율에 맡겼다. 법인화 이후에도 일정한 재정지원을 보장하며, 등록금은 가이드라인을 정해 대학이 함부로 올리지 못하게 한다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법안을 국회로 보냈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고등교육평가원은 대학, 전문대 등 모든 고등교육기관의 평가를 전담할 독립기구다. 기존에도 대학교육협의회, 언론 등 대학 평가를 해온 곳이 적지 않았지만 객관성 문제 등으로 보다 공신력있는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 역시 2005년 국회 상정된 관련법이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대학교육협의회의 반발 등이 입법화의 걸림돌이다.

이밖에 2007년까지 국립대 50개를 35개로 줄이기로 했던 2005년 교육부 업무계획도 진행 중이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누리사업

그런가 하면 정책방침이 나온 지 3~4년이 지나면서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선 것들도 있다. 참여정부 들어 새롭게 시작된 재정지원사업인 지방대 혁신역량 강화사업, 즉 누리(NURI)사업이 그것이다. 지방대 특성화 및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2004년부터 5년간 130여개 지방대학에 총 1조 3200억원을 투입한다. 지원방식은 BK21과 비슷하지만 참여정부의 특색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학지원 사업으로 꼽힌다.

일단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철학을 대학 차원에서 구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방대에 대한 재정지원이 지역균형발전계획 및 지역산업 육성전략과 연계된다. 또 기존의 지방 발전모델보다 진일보한 개념에 입각해 마련됐다는 평가다.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수는 “기존의 지역발전 모델이 주로 산업체를 축으로 한 ‘클러스터 (cluster)' 개념에 근거한 것이었다면 누리사업은 ‘네트워크(network)’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누리사업에서는 대학이 산업벨트의 ‘허브’가 된다. 대학이 생산하는 지식과 아이디어가 네트워크를 타고 해당 지방의 기업과 지자체로 흘러들어가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가 바로 이런 모형이다. 정 교수는 “누리사업은 한층 더 지식기반사회에 적합한 지역 발전 모델”이라고 평했다.

대학정보 공시제 도입, 대학을 시장에서 평가한다

참여정부가 거둔 가시적 성과가 또 하나 있다. ‘대학 정보공시제’의 도입이다. ‘대학구조개혁방안’에서 제시된 정보공시제는 예고 단계부터 대학들을 긴장시켰다. 정보 공시제는 증권 시장의 기업 공시제에 착안해 교육부 내부에서 고안됐다. 기업 공시제가 기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 정보의 격차에서 오는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으려는 것처럼 정보 공시제 역시 대학 당국과 대입 지망생들 사이의 정보 격차를 해소, 고교 졸업생들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자는 게 목적이다.

2008년부터 정보 공시제가 시행되면 각 대학별로 충원률, 취업률, 장학금 현황 등이 인터넷을 통해 낱낱이 공개된다. 각 대학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 사회에 내보내는지 교육 수요자들이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는 셈이다. 오랫동안 미달이었거나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수요자들의 외면 속에 퇴출이 앞당겨질 전망이다. 정보 공시제의 도입을 기점으로 그간 물심양면 정부가 개입해왔던 대학 구조개혁의 주도권이 시장으로 넘어가는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뽑는 경쟁에서 가르치는 경쟁으로”

대학에 경쟁을 불어넣는 각종 제도와 함께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2007년 6월 26일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고등교육정책사업비 증액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고등교육 전략적 발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07년 6월 26일 대통령과 대학총장과의 토론회 자리에서 정부는 고등교육 지원예산을 대폭 늘리는 ‘고등교육 전략적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2008년 고등교육 예산을 전년보다 1조원 늘리고, 2009년 이후에도 연간 2조원 수준의 예산을 추가 확보하는 계획이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 정부 부담은 국내총산생(GDP) 대비 0.6% 수준으로, OECD 평균 1.1%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말로만 외치던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 실질적으로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긴 계획이다.

이처럼 문민정부 이래 역대 정부의 대학정책은 대학에 경쟁을 조성해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로 일관돼 왔다.
학원들의 배치표 점수를 놓고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던 교육 수요자들의 시선을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 쪽으로 돌려놓자는 뜻이었다.

“대충 뽑아서 잘 가르치자”(문민정부 이명현 교육부 장관) “실력없는 교수는 퇴출해야 하고, 실력 없는 학생은 졸업하기 어렵게 해야 한다”(김대중 대통령) “대학이 뽑는 경쟁에서 벗어나 가르치는 경쟁을 해야 한다”(노무현 대통령)는 말은 표현은 달라도 한 뿌리에서 나온 발언들이었다.
특별기획팀 | 등록일 : 200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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